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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수원 행궁동 :: 수원화성 행궁동 이야기& 행궁동의 과거와 현재

by 공룡능선 2023.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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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0년 전 수원화성이 감싸고 있는 신풍동에 둥지를 틀었다. 도시 치고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수원화성이 있어서 고즈넉한 분위기의 마을이 정겨워 보이고, 몇 대가 이어 사는 마을이다.  어느 집 하면 다 아는 그런 마을이 좋았다.
 
 

수원화성 벗꽃

 
성주변을 걸어도 보고, 앉아서  쉬어도 보고, 서장대에 올라가 시내를 내려다보기도 하며 풍류를 즐기는 선비처럼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그 평화로운 마을에 어느 날 땅을 파고 도로포장을 시작하더니 생태교통마을을  만든다고 했다.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길을 포장하며 이런 일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마을의 집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장을 찬 사람들은 이 마을의 사람들을 분열시키기도 했다. 생태교통마을을 하기 위해 수원시장은 자금을 가져와 행궁동에  많은 돈을 투자했다고 하는데 마을이 좋아서 살고 싶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 슬픈 행사였다고 기억한다.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전봇대를 뽑고 땅을 파서 전선을 묻고, 가로수로 소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한여름 삼복더위에 인부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무거운 대리석으로 차도와 인도를 깔았고, 그로인해 겨울철 마을 사람들은 대리석에 내려앉은 서리에 미끄러져 팔골절상을 입은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마을사람들은 갑자기 하는 공사로 지반이 흔들린다고 불안해했었다. 그리고 골목길에는 아스팔트를 깔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마을에 길이 바뀌었다. 그리고 이 마을은 매일 축제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어느 날은 마을에 모든 차를 주차하지 못하게 해서 먼 곳에 차를 주차하고 걸어 들어와야 하는 불편한 날들이 있었다. 밤에 길가에 차가 없으니까 옆집 냉장고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시끄럽게 느껴졌다. 소음을 차가 흡수해 준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차가 없는 거리는 너무 허전하다고 느끼기까지 했다.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그렇게 차를 못 들어오게 하고 생태교통마을 축제가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구경을 하고 신기해했다. 이 마을은 차가 없는 마을처럼 ,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차가 없어서 좋겠다고 한다. 그러나 며칠이지만 마을 사람들은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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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모두가 즐거웠다. 여유롭고 풍요롭게만 느껴졌다.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모든 거리는 매연 없는 새로운 거리로 바뀔 것 같이 코스프레를 했다. 이곳에 놀러 오는 사람들은 좋아했고 마음껏 즐겼다.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그러면서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카페가 하나둘 생기더니 수원시에서는 홍보를 하기 시작했고 더 큰 행사들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그러던 어느 날부터 집값이 오르기 시작했고 전국의 부동산이 모이기 시작했다. 몇십 년 동안 집값이 오르지 않던 마을에 천만 원이 올랐을 때부터 집을 팔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에 몇십억 원으로 가격이 올랐다. 그러면서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자의 반 타의 반 집이 있는 사람들은 팔고 나가고 세를 살던 사람들은 집주인이 바뀌고 카페로 바뀌며 살고 싶어도 살지 못하고 쫓겨나가는 신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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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이곳은 주말에는  교통체계가 전국에서 가장 복잡한 마을이 되어버린 것 같다. 차와 사람이 뒤엉키고 마을 사람들조차 차를 세울 곳이 없다. 생태교통마을이라는 푯말이 아직도 서있는데 2013년 꼭 10년 후의 행궁둥의 모습은 생태교통마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교통지옥이 되어버렸다. 
 
 
 
 

 
 
창문은 열면 옆집 음식점 주방이 보이고, 옥상에 빨래를 널면 주변의 음식점들의 연통에서 풍기어 나오는 냄새가 가득 배인다. 삶의 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외부에 나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차와 사람이 엉켜 있어서 기분이 나쁘다.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누군가의 마을로 여행을 갔을 때 나도 호시심이 많았고, 떠들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다른 곳에 여행 가도 조용히 다닌다. 그것은 우리 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이 너무 떠들고 소리치는 것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조용하고 예의 바른 마을이 이제는 골목골목마다 젊은 이들이 담배를 물고 있고, 음식점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앞치마 입고 침을 뱉어가며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을 보면서 어른들은 말씀하신다. “새상이 말세다, 말세.“ 돈을 쫓는 문화로 마을은 어르신말처럼 말세가 되어가고 있다.
 
 
 
 
 

내가 살고싶었던 마을

 
이곳에는 살고 싶어도 살 수가 없다. 이곳에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부동산에서 집을 팔라고 전국에서 몰려들어 주인을 만나 설득에 설득을 한다. 결국은 집을 팔고 이사를 가고 오늘도 누군가의 집은 뜯기고 카페로, 음식점으로 또는 주점으로 변해간다. 더 이상 내가 살고 싶은 마을이 아닌 곳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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